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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스페인어와 나 ( EL ESPAÑOL Y YO )

- 무제 -

계모님께서 자유부인으로서 자유행각을 전개하는데 있어서 하나의 거치장스러운 걸림돌은 바로 나라고 하는 존재였다. 내가 없으면 마음 놓고 재미있게 삶을 즐길 수가 있을 텐데(gozar de la vida)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 ‘걸림돌’이 눈치 빠르게 스스로 알아서 계모님의 고민 아닌 고민을 말끔이 가셔주었으니 이런 신통방통할 데가 또 어디 있으랴! 즉, 멀고 먼 나라로 유학을 떠나겠다니 말이다. 그러므로 계모님으로서는 “그까짓” 여비쯤이야 얼마든지 대줄 수 있는 일이었다. 그 여비가 집 한 채 값이든 또는 두 채 값이든 간에 말이다. 당시 고교 3년생이었던 나는 걔모님의 그런 속 깊은 전략적 계산(cálculo estratégico)을 알 리 없었다. 무조건 계모님의 그 호의가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이제 계모님의 하해 같은 은혜를 입어 외국 유학의 길을 떠나게 되었으니, 그저 감격스러울 뿐이었다. 그동안 계모님으로부터 받았던 학대(?)는 이제 내 기억으로부터 깔끔이 소멸되었다. 유학 가서 성공하면 계모님에 대한 은혜를 갚아야지, 이게 당시 내가 계모님에 대해 품었던 극히 인간적인 순진한 감정이었다.

그 이튿날 아침 일찍 나는 가벼운 걸음걸이로 학교에 갔다. 그리고 오전수업을 기분 좋게(?) 마치고 점심시간을 틈타서 교문 밖을 빠져나갔다. 명색이 3학년 졸업반인지라 교문 출입이 비교적 자유로웠다. 교문 밖을 빠져나온 나는 걸음에 최고 속력을 불어넣었다. 광화문 근처에 있다는 스페인어학회 사무실을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학회의 부회장이신 김이배 선생님을 찾아뵙고 장학생으로 뽑아달라고 사정하기 위해서였다. 필요하다면 엉엉 울면서 매달리면서 떼를 쓰기 위해서였다. 흔히 하는 말로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 작전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여기에 생각지도 않았던 장애물(?)이 나타나서 나의 빠른 걸음을 중단시켰으니…….

5미터 정도 앞에서 웬 점잖게 생긴 중년신사가 내 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내가 그쪽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 옆을 지나치려는데 그 중년신사가 나를 힐끗 바라보더니, 아니 무섭게 째려보더니

“학생, 잠깐만!”

이렇게 위엄 섞인 음성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얼결에 그쪽으로 고개를 삐딱하게 돌리면서 물었다.

“저 말입니까?”

나의 이 건방진 되물음에 중년신사는 잘 다듬어진 얼굴표면에 잔뜩 불쾌한 표정을 깔면서,

“여기 학생 말고 또 누가 있어?”

라고 내뱉듯이 말했다. 이 말에 나는 그제서야 약간, 아니 잔뜩 긴장하면서 중년신사의 얼굴을 성의 있게 뜯어보았다. 그 순간 나는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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